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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仁)의 재해석

좋은 모습?
尙書, 金滕
무왕이 병이 들어 생명이 위태롭게 되자, 주공이 무왕의 회복을 축원하는 기도를 한 기록

既克商二年,王有疾, ... 周公 ... 告 太王、王季、文王
상나라를 정벌한지 2년째 되던 해 무왕이 병이났다. 주공이 태왕, 계왕, 문왕에게 다음과 같이 고축하였다.
... 以旦代某之身。予仁若考能,多材多藝,能事鬼神。乃元孫不若旦多材多藝,不能事鬼神。 ...
... 단(旦)이 그분(무왕)을 대신하도록 해주소서. 제 모습은 돌아가신 문왕과 비슷하고, 재주도 많으니 귀신을 잘 모실 수 있습니다. 무왕은 단(旦)처럼 재주가 많지 못하여 귀신을 제대로 모실 수 없습니다...
김병환, "공자 이전의 仁개념 연구", 동양철학 제20집(2003)

온화, 인자, 부드러움, 자비로움?

선생님이 이렇게 말했다. "듣기 좋은 말이나 보기 좋은 낯은 인(仁)과는 거리가 멀어!"
子曰:「巧言令色,鮮矣仁!」 (學而, 1.3)

선생님이 이렇게 말했다. "듣기 좋은 말이나 하고, 좋은 낯으로 대하고, 아주 공손하게 행동하는 것을 쭈오치우밍은 부끄러워 했어. 나도 그래. 원한을 감추고 친구처럼 좋게 대하는 짓을 쭈오치우밍은 부끄러워 했어. 나도 그래."
巧言、令色、足恭,左丘明恥之,丘亦恥之。匿怨而友其人,左丘明恥之,丘亦恥之 (논어 5.25) (左丘明 为《左传》和《国语》的作者。)

강인함, 흔들림 없음

단단하고, 흔들림 없고, 투박하고, 어눌한 것. 이런 것이 인(仁)에 근접해."
剛毅木訥,近仁 (子路, 13.27)

윤리적 강단이 있는 자만이 사람을 제대로 좋아할 수도 있고, 제대로 미워할 수도 있지.
唯仁者, 能好人 能惡人 (里仁, 4.3)

자공이 이렇게 말했다. "고귀한 군자도 미워하는 것이 있습니까?" 선생님이 이렇게 대답했다. "미워하는 것이 있지. 다른 사람의 악함을 들춰내서 떠드는 자를 미워하고, 저속하게 살면서 고귀한 자를 헐뜯는 자를 미워하고, 용기만 있고 무례한 자를 미워하고, 과감하기만 하고 꽉막힌 자를 미워하지." "너도 미워하는게 있니?"라고 묻자 자공이 이렇게 말했다. "지엽말단을 따지고 드는 것을 지혜라고 여기는 자, 불손함을 용기라고 여기는 자, 고자질을 정직이라 여기는 자를 미워합니다."
子貢曰:「君子亦有惡乎?」子曰:「有惡:惡稱人之惡者,惡居下流而訕上者,惡勇而無禮者,惡果敢而窒者。」曰:「賜也亦有惡乎?」「惡徼以為知者,惡不孫以為勇者,惡訐以為直者。」 (陽貨, 17.24)

"윤리적 강단이 있는 자는 반드시 용기가 있지. 용기가 있다고 해서 반드시 윤리적 강단이 있는 것은 아니고."
仁者,必有勇。勇者,不必有仁。(憲問, 14.4)

선생님이 이렇게 말했다. "윤리적 강단이 제대로 있다면 사단 병력이 들이닥쳐도 물러서지 않겠지."
子曰:「當仁不讓於師。」 (衛靈公, 15.36)

說文》二千五百人爲師。《周禮·地官》五旅爲師。《註》二千五百人。《疏》春秋之時,雖累萬之衆,皆稱師。詩之六師,謂六軍之師。

기회주의, 편의주의적 자기 합리화에 대한 경계

선생님이 이렇게 말했다. "재산과 지위는 모두가 원하는 것이지만, 올바른 도리에 따라 획득한 것이 아니라면 거기에 머물어서는 안된다. 가난함과 비천함은 모두가 싫어하는 것이지만, 부당하게 그렇게 된 경우라면 그 상황을 면하려 해서는 안된다. 고귀한 군자가 윤리적 강단을 저버린다면 명예롭지 못한 것이다. 고귀한 군자는 식사 중에도 윤리적 강단에 위배되는 행위를 하지 않고, 아무리 급하고 아무리 위험해도 반드시 윤리적 강단에 따라 행동한다."
子曰:「富與貴是人之所欲也,不以其道得之,不處也;貧與賤是人之所惡也,不以其道得之,不去也。君子去仁,惡乎成名?君子無終食之間違仁,造次(extreme haste)必於是,顛沛(extreme peril)必於是。」 (里仁, 4.5)

평가의 어려움

누가 이렇게 말했다. "염옹(중궁)은 윤리적 강단이 있지만 말재주는 없다." 선생님이 이렇게 말했다. "말재주가 무슨 소용이 있겠나? 말재주로 사람들을 이리 저리 부리면 여러사람들이 미워하게 되지. 염옹이 윤리적 강단이 있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말재주는 무슨 소용이 있겠나?"
或曰:「雍也,仁而不佞(영)。」子曰:「焉用佞?禦人以口給,屢憎於人。不知其仁,焉用佞?」 (公冶長, 5.5)

맹무백이 이렇게 물었다. "자로는 윤리적 강단이 있습니까?" 선생님이 이렇게 대답했다. "모릅니다." 맹무백이 다시 묻자 선생님이 이렇게 말했다. "仲由(자로)는 제후국의 병력 동원을 총괄하는 임무를 맡길만 하지만 윤리적 강단이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염구(冉求)는 어떤가요?" 선생님이 이렇게 말했다. "염구는 천 가구가 되는 고을이나 대부의 집안 일을 총괄하는 일을 맡길만 하지만 윤리적 강단이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공서적(公西赤)은 어떤가요?" 선생님이 이렇게 말했다. "공서적은 조정에서 허리띠를 두르고 사신이나 손님을 맞이하고 인사를 나누는 일을 맡길만 하지만 윤리적 강단이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孟武伯問:「子路仁乎?」子曰:「不知也。」又問。子曰:「由也,千乘之國,可使治其賦也,不知其仁也。」 「求也何如?」子曰:「求也,千室之邑,百乘之家,可使為之宰也,不知其仁也。」 「赤也何如?」子曰:「赤也,束帶立於朝,可使與賓客言也,不知其仁也。」 (公冶長, 5.8)

자장이 이렇게 물었다. "도지사 자문(子文)은 세번이나 도지사에 임명되었는데 기뻐하는 기색이 없었고, 세번이나 파면되었는데 나쁜 감정을 담아두는 기색이 없이 종전 도지사 업무를 신임 도지사에게 반드시 알려주었습니다. 어떤가요?" 선생님이 이렇게 말했다. "충직하군." "윤리적 강단이 있는 것 아닌가요?"라고 자장이 묻자 선생님이 이렇게 말했다. "모르겠네. 그게 어째서 윤리적 강단이지?" "최저(崔杼)가 제나라의 군주를 살해하자 진문자는 수십대나 되는 수레와 말을 버리고 제나라를 떠났습니다. 다른 나라에 이르러서 그는 '너희들도 우리 나라의 최대감과 마찬가지군'이라면서 그 나라를 떠났습니다. 또 다른 나라에 가서도 '너희들도 우리 나라의 최대감과 마찬가지군'이라면서 그 나라를 떠났습니다. 어떤가요?" 선생님이 이렇게 말했다. "깨끗하군." "윤리적 강단이 있는 것 아닌가요?"라고 자장이 묻자 선생님이 이렇게 말했다. "모르겠네. 그게 어째서 윤리적 강단이지?"
子張問曰:「令尹子文三仕為令尹,無喜色;三已之,無慍色。舊令尹之政,必以告新令尹。何如?」子曰:「忠矣。」曰:「仁矣乎?」曰:「未知,焉得仁?」「崔子弒齊君,陳文子有馬十乘,棄而違之。至於他邦,則曰:『猶吾大夫崔子也。』違之。之一邦,則又曰:『猶吾大夫崔子也。』違之。何如?」子曰:「清矣。」曰:「仁矣乎?」曰:「未知。焉得仁?」 (公冶長, 5.19)

원헌(原憲)이 부끄러움에 대해서 질문했다. 선생님이 이렇게 말했다. "나라가 제대로 굴러가건 나라가 엉망이건 먹고사는 것에만 골몰하는 것, 이게 부끄러운 거야." "상대방을 이기려는 태도, 자기 자랑, 남에 대한 원망, 물질적 욕망에 빠져들지 않는 것. 이것이 윤리적 강단이라 할만하지 않습니까?"라고 묻자 선생님이 이렇게 말했다. "그건 어려운 것이라 할만하지. 윤리적 강단인지는 나는 잘 모르겠네."
憲問恥。子曰:「邦有道,穀;邦無道,穀,恥也。」 「克(승벽)、伐(자랑하다; 矜)、怨、欲 不行焉,可以為仁矣?」子曰:「可以為難矣,仁則吾不知也。」 (憲問, 14.1)

선생님이 이렇게 말했다. "지혜로운 자가 누리는 기쁨은 물과 같고, 윤리적 강단이 있는 자가 누리는 기쁨은 산과 같다. 지혜로운 자는 역동적이고, 윤리적 강단이 있는 자는 흔들림이 없다. 지혜로운 자는 즐거움을 누리고, 윤리적 강단이 있는자는 수(壽)를 누린다."
子曰:「知者樂水,仁者樂山;知者動,仁者靜;知者樂,仁者壽。」 (雍也, 6.23) 論語注疏: 仁者樂如山之安固,自然不動,而萬物生焉。

초심자를 위한 '쉬운' 설명

번지(樊遲)가 지혜에 대해서 질문했다. 선생님이 이렇게 말했다. "백성들이 올바른 길로 가도록 인도하는데 노력하고, 귀신을 경건히 대하되 적당히 거리를 두는 것. 이것이 지혜라 할만하지." 윤리적 강단에 대해서 질문하자 선생님이 이렇게 말했다. "윤리적 강단은 말이야 어려운 것부터 먼저 해내고 보상은 나중으로 돌리는 것이지. 이것이 윤리적 강단이라 할만하지."
樊遲問知。子曰:「務民之義,敬鬼神而遠之,可謂知矣。」問仁。曰:「仁者先難而後獲,可謂仁矣。」 (雍也, 6.22)

번지(樊遲)가 윤리적 강단에 대해서 물었다. 선생님이 이렇게 말했다. "사람을 사랑하는 거지." 지혜가 뭔지를 묻자 선생님이 이렇게 말했다. "사람을 아는 거지." 번지가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樊遲問仁。子曰:「愛人。」 問知。子曰:「知人。」 樊遲未達 (顏淵, 12.22)

번지(樊遲)가 윤리적 강단에 대해서 물었다. 선생님이 이렇게 말했다. "집에서는 공손하게 행동하고, 일처리는 경건하게 하며,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는 충직하게 행동해. 설사 오랑캐의 나라에 가더라도 이걸 저버리면 안돼."
樊遲問仁。子曰:「居處恭,執事敬,與人忠。雖之夷狄,不可棄也。」 (子路, 13.19)

子張問仁於孔子。孔子曰:「能行五者於天下,為仁矣。」請問之。曰:「恭、寬、信、敏、惠。恭則不侮,寬則得眾,信則人任焉,敏則有功,惠則足以使人。」 (陽貨, 17.6)

자공(子貢)이 이렇게 말했다. "백성들에게 널리 베풀어 모든 중생을 구제할 수 있다면 이건 어떤가요? 윤리적 강단이라 할만하지 않나요?" 선생님이 이렇게 말했다. "그게 어찌 윤리적 강단에 그칠 문제냐? 그건 필시 성인(聖人)에 해당하겠지. 요임금과 순임금도 그렇게 하지 못해서 고민한 것 아니겠느냐. 윤리적 강단은 자기가 성취하고 싶은 것을 남들도 성취할 수 있도록 하고, 자기가 도달하고 싶은 것을 남들도 도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지. 자기 주변에서 얻은 교훈을 먼 타인에까지 적용하는 것, 이것이 윤리적 강단을 실천하는 방법이라 할만하지."
子貢曰:「如有博施於民而能濟眾,何如?可謂仁乎?」子曰:「何事於仁,必也聖乎!堯舜其猶病諸!夫仁者,己欲立而立人,己欲達而達人。能近取譬,可謂仁之方也已。」 (雍也, 6.30)

'보상 심리'에 대한 경계

자공(子貢)이 이렇게 말했다. "백이와 숙제는 어떤 사람인가요?" 선생님이 이렇게 말했다. "예전의 훌륭한 사람들이지." "억울함이 없었나요?"라고 자공이 묻자, 선생님이 이렇게 말했다. "윤리적 강단을 추구해서 윤리적 강단을 실천했는데 무슨 원망이 있겠니?"
子貢曰:「伯夷、叔齊何人也?」曰:「古之賢人也。」曰:「怨乎?」曰:「求仁而得仁,又何怨。」 (述而, 7.15)

선생님이 이렇게 말했다. "용기를 좋아하고 가난함을 싫어하면 반란을 일으키게 된다. 사람들이 윤리적 강단이 없다고 이를 매우 싫어하면 반란을 일으키게 된다."
子曰:「好勇疾貧,亂也。人而不仁,疾之已(이)甚,亂也。」 (泰伯, 8.10)

윤리적 강단을 좋아하는 사람치고 윤리적 강단이 없는 자를 미워하는 것을 나는 아직 본적이 없어. 윤리적 강단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걸 그리 대단히 여기지 않아. 윤리적 강단이 없는 자를 미워하는 자는 그걸 윤리적 강단이라고 여기지. 윤리적 강단이 없는 자를 이용해서 자기 자신을 높이려 하지마. 누구라도 전력을 다하면 하루쯤은 윤리적 강단을 가질 수 있지 않겠니? 그럴 힘이 모자라는 사람을 아직 본 적이 없어. 그런자가 실제로 있는지 몰라도 난 아직 본 적이 없어.”
我未見好仁者,惡不仁者。好仁者,無以尚之;惡不仁者,其為仁矣,不使不仁者加乎其身。有能一日用其力於仁矣乎?我未見力不足者。蓋有之矣,我未之見也。」(里仁, 4.6)

쉬운가, 어려운가?

선생님이 이렇게 말했다. "윤리적 강단이 멀리 있는 건가? 내가 원하기만 하면 당장에 윤리적 강단에 따라 행동할 수 있지."
子曰:「仁遠乎哉?我欲仁,斯仁至矣。」 (述而, 7.30)

선생님이 이렇게 말했다. "어찌 내가 감히 성스러움이나 윤리적 강단이 있다고 하겠느냐. 나는 그저 싫증 냄 없이 노력할 뿐이고 귀찮아 하지 않고 사람들을 가르칠 뿐이다. 이것이 내가 하는 일이라고 할만하지." 공서화가 이렇게 말했다. "바로 그것이 제자들이 도저히 배울 수 없는 것이지요."
子曰:「若聖與仁,則吾豈(기)敢?抑為之不厭,誨(회)人不倦,則可謂云爾已矣。」公西華曰:「正唯弟子不能學也。」 (述而, 7.34)

선생님은 이익, 운명, 윤리적 강단에 대해서는 자주 이야기 하지 않았다.
子罕言利,與命,與仁。(子罕, 9.1)

사마우가 윤리적 강단에 대해서 물었다. 선생님이 이렇게 말했다. "윤리적 강단은 말을 참는 것이야." "말을 참는 것이 어째 윤리적 강단이라 할만한지요?"라고 묻자 선생님이 이렇게 말했다. "실천하기 어려우니 말을 안참고 막하면 되겠니?"
司馬牛問仁。子曰:「仁者其言也訒(인)。」曰:「其言也訒,斯謂之仁已乎?」子曰:「為之難,言之得無訒乎?」 (顏淵, 12.3)

궁극적 가치

선생님이 이렇게 말했다. "윤리적 강단이 있고 의지가 굳은 사람은 살기 위해서 윤리적 강단에 어긋나는 행위를 하지 않는다. 자신이 죽더라도 윤리적 강단에 따라 행동하지."
子曰:「志士仁人,無求生以害仁,有殺身以成仁。」 (衛靈公, 15.9)

윤리적 강단을 좋아하되 배움을 좋아하지 않으면 바보가 되는 폐해가 있다. 지혜를 좋아하되 배움을 좋아하지 않으면 방탕하게 되는 폐해가 있다. 신의를 좋아하되 배움을 좋아하지 않으면 도적떼가 되는 폐해가 있다. 정직을 좋아하되 배움을 좋아하지 않으면 꼼짝달싹 못하게 되는 폐해가 있다. 용기를 좋아하되 배움을 좋아하지 않으면 반란을 일으키게 되는 폐해가 있다. 강인함 좋아하되 배움을 좋아하지 않으면 미친 짓을 하게 되는 폐해가 있다.
好仁不好學,其蔽也愚;好知不好學,其蔽也蕩;好信不好學,其蔽也賊;好直不好學,其蔽也絞;好勇不好學,其蔽也亂;好剛不好學,其蔽也狂 (陽貨, 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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