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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신환, "정약용의 管仲觀" 동양철학 제19집 (2003)
김성준, "다산과 일본 고학파 다자이 슌다이(太宰春臺)의 管仲論", 동양한문학연구 제34집 (2012)

1. 관중과 桓公, 公子糾

공자 규(糾)와 제 환공은 형제 간이었고, 관중은 원래 규를 모시고 있었습니다. 규와 환공이 제(齊)나라 제후 자리를 놓고 “형제의 난”을 벌일때, 규를 보좌하던 관중은 환공을 살해하려 시도했으나 실패하였고, 규는 이웃나라로 도망가고 그 동생 환공이 제나라 제후가 된 후, 이웃나라를 압박하여 규를 살해하게 하였습니다. 자신의 보스가 이렇게 살해되면 그 신하들은 마땅히 자결하는 것이 당시에는 절개있는 행동으로 칭송받았던 모양입니다. 아주 오랜 옛날에 백이, 숙제가 그랬고(공자는 백이, 숙제에 대해서, "윤리적 결기를 원해서, 윤리적 결기를 이룬 사람들"이라고 평했습니다), 규의 또 다른 신하인 소홀 또한 자결했습니다. 그러나 관중은 친구(포숙아)의 빽을 동원하여(이른바 “관포지교(管鮑之交)“) 오히려 환공의 재상으로 기용되는 수완을 발휘하였습니다. 자공과 자로는 바로 이 점을 지적하며, 관중이 윤리적 결기가 없는 파렴치한 “배신”과 “줄타기”의 달인이라고 비난하는 것입니다. “도덕성 제로(0)”라는 것이죠.

2. 관중은 쪼잔해! 예법도 몰라!

선생님이 이렇게 말했다. "관중은 쪼잔해." 누가 물었다, "관중이 검소했다는 뜻입니까?" 선생님이 말했다, "관씨는 집이 세채나 있었고 집마다 직원과 하인들이 따로 있었어. 그게 검소한건가?" "그렇다면 관중이 예법을 알았다는 뜻인지요?"라고 묻자, 선생님이 말했다. "제후국의 제후들이나 나무장식문을 두는데 관씨도 나무장식문을 가지고 있었고, 제후들이 서로 접대할 때 사용하는 음료 테이블을 관씨도 가지고 있었어. 관씨가 예법을 안다면 개나 소나 예법을 알게?"
子曰:「管仲之器小哉!」或曰:「管仲儉乎?」曰:「管氏有三歸,官事不攝,焉得儉?」「然則管仲知禮乎?」曰:「邦君樹塞門,管氏亦樹塞門;邦君為兩君之好,有反坫,管氏亦有反坫。管氏而知禮,孰不知禮?」 (八佾 3.22)

3. 하지만, 윤리적 결기는 다른 문제

누가 자산에 관해서 물어보자 선생님이 이렇게 말했다. "좋은일 많이 한 사람이지." 자서에 대해서 묻자, 선생님이 말했다. "그 사람 이야기는 꺼내지도 말어." 관중에 대해서 묻자 이렇게 말했다. "인물이지. 병읍(駢邑)을 백(伯)씨로부터 몰수해서 차지했는데 삼백 가구나 되는 마을 사람들이 가난하게 살면서도 평생 원망하는 이가 없었지."
或問子產。子曰:「惠人也。」問子西。曰:「彼哉!彼哉!」問管仲。曰:「人也。奪伯氏駢邑三百,飯疏食,沒齒,無怨言。」 (憲問 14.9)

자로가 이렇게 말했다. "환공이 공자 규를 죽게 했을때 소홀은 죽음으로 저항했는데 관중은 죽지 않았어요. 윤리적 결기가 없는 것 아닌가요?" 선생님이 이렇게 말했다. "환공이 아홉 제후국을 규합하는 일을 전쟁 한번 안치르고 성사시킨 것은 관중의 능력이었어. 그 정도 윤리적 결기면 된거지. 그 정도 윤리적 결기면 되고말고."
子路曰:「桓公殺公子糾,召忽死之,管仲不死。」曰:「未仁乎?」子曰:「桓公九合諸侯,不以兵車,管仲之力也。如其仁!如其仁!」 (憲問 14.16)

자공이 이렇게 말했다. "관중은 윤리적 결기가 없는 자 아녜요? 환공이 공자 규를 죽게했을 때 죽음으로 항거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환공의 재상이 되었잖아요?" 선생님이 이렇게 말했다. "관중은 환공을 보좌하여 여러 제후국의 패권을 차지하고 천하를 바로잡았어. 오늘날까지도 사람들은 그 혜택을 누리고 있어. 관중이 없었어봐, 오랑캐들이 우리를 지금 지배하고 있을거야. 필부들처럼 소갈머리 없이 자결하고 그 시체가 시궁창에 딩굴어도 아무도 알아주는 사람도 없는 그런 걸 원하나?"
子貢曰:「管仲非仁者與?桓公殺公子糾,不能死,又相之。」子曰:「管仲相桓公,霸諸侯,一匡天下,民到于今受其賜。微管仲,吾其被髮左衽矣。豈若匹夫匹婦之為諒也,自經於溝瀆,而莫之知也。」 (憲問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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