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학년 2학기 민법총론 문제해설 및 채점 평

기말고사 문제는 여기.

해설:

김갑동이 수여한 대리권의 범위를 넘어선 거래를 이을순이 하였는데, 이을순은 자신이 수여받은 대리권의 범위를 잘못 인식한 나머지 그 거래가 대리권을 넘어선 것이라는 점을 모르고 있는 경우이다.

본인과 대리인 간에 이러한 오해가 있었다는 사정때문에 거래의 상대방인 정병국의 지위가 불안하게 되는 것은 부당할 것이다. 정병국으로서는 이을순에게 기본대리권이 있었다는 점, 그리고 이 사건 거래를 대리하여 체결할 권한이 이을순에게 있다고 믿을 정당한 이유가 있었다는 점을 주장, 입증하는데 성공하면 김갑동을 상대로 이 매매계약의 이행을 구할 수 있다.

김갑동을 상대로 위와같이 제126조의 표현대리가 성립함을 주장, 입증하는 것이 부담스럽게 여겨진다면, 정병국은 이을순을 상대로 제135조의 책임을 물어 손해배상을 구할 수도 있다(반대설 있음). 이 경우 이행이익의 배상을 구할 수 있다고 보므로 그 액수는 계약이 이행되었을 것을 가정할 때 정병국이 누릴 수 있는 이익(2억2천만원의 시장가격이 형성된 물건을 1억7천만원에 매수하였으므로 5천만원의 이익; 그러나 가격 앙등을 예견하기 어려웠다면 이 사건 오피스텔의 통상 가치와 1억7천만원 간의 차액)의 배상을 이을순으로부터 받아낼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지급한 1억1천만원 및 그 이자의 반환을 구하는 것에 더하여.) 이경우 이을순은 다시 김갑동에게 위임계약 등에 기하여 배상을 구하는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사건 매매계약이 착오로 인한 것이라는 김갑동의 주장은 부당하다. 착오가 있었는지 여부는 대리인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바(제116조 제1항), 매매계약에 관한 한 이을순은 착오에 영향받은 바 없다. 이을순은 거래의 목적물, 가액 등에 아무런 착오가 없었으며, 오로지 자신이 가지는 대리권의 범위에 대하여 오해가 있었지만, 대리권의 범위는 매매계약의 내용이 아니다. 다만, 매매계약을 대리하여 체결하기에 이르는 동기에 착오가 있었다고 볼 수 있는지에 대하여는 논의의 여지가 있으나, 설사 동기의 착오라 하더라도 그것이 표현된 바 없으므로 착오를 이유로 매매계약을 취소할 수는 없을 것이다.

채점평:

많은 응시생이 매매계약이 착오로 이루어졌다고 파악하였는데, 본인이 희망하는 매도가액과 대리인이 결정한 매도가액 간에 차이가 있다는 사정, 특히 본인이 원했던 액수만큼 대리인이 받아내지 못했다는 사정이 있다고 해서 매매거래 자체에 착오가 있었다고 판단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대리인을 사용하여 자신의 경제활동 영역과 능력을 보충, 확장하려는 본인은 이러한 차이가 생길 가능성을 당연히 감수해야 한다. 자신이 기대했던 액수보다 대리인이 많이 받아 낸 경우 그 이익을 본인이 고스란히 취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 반대 경우의 경제적 불이익도 본인의 몫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착오여부는 대리인을 기준으로 판단한다는 법리까지는 정확히 지적한 다음, 이 사건의 경우 대리인에게 착오가 있었다는 잘못된 분석을 한 응시생도 많았는데, 이을순의 착오는 대리권의 범위에 대한 것이지, 매매계약의 내용에 관한 것이 아니다. 제116조 제1항에서 말하는 “의사표시”는 대리로 행하여지는 거래(이 사건의 경우, 오피스텔 매매)를 구성하는 의사표시를 말하는 것이지, 대리권 수여와 관계되는 의사표시가 아니다. 그리고 대리권 수여는 단독행위인바, 그를 행한 김갑동의 의사표시에 착오가 있은 것도 아니다. (이을순이 그 취지를 오해하였을 뿐이다)

이 사안이 마치 “특정한 법률행위를 위임한 경우”인 듯 오해하고 제116조 제2항을 언급한 응시생도 더러 있었다. 그러나, 제116조 제2항이 동원되는 경우를 예로들어 설명하면, 자신이 소유하는 그릇이 고려청자라는 사실을 본인이 알면서, 그 그릇의 매도를 대리인에게 맡기며 A가 지불하는 액수를 그대로 받고 매도하라고 지시한 경우, 대리인이 그 그릇의 값어치를 모르고 A가 부르는 싼값에 그 그릇을 매도하였더라도 본인은 그 거래를 취소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출제된 사안은 특정한 법률행위를 본인이 지시한 경우라고 할 수 없고, 대리인이 자신의 판단으로 그 거래를 행하는 경우이다.

그리고 이 사건 매매계약이 착오로 이루어졌다고 (잘못) 설명한 다음, 정병국이 선의의 제3자 이므로 보호된다고 답변한 응시생들도 있는데, 정병국은 이 사건 매매거래의 “당사자(매수인)”이지, “제3자”가 아니다. 물론 김갑동과 이을순 간의 대리권 수여 및 위임계약 관계를 기준으로 보면 정병국은 “제3자”이다. 그러나 위임계약 관계나 수권행위가 착오를 이유로 취소된 바는 없으므로, 선의의 제3자 보호를 운운할 여지는 없다.

표현대리에 관한 초보적 논점, 착오 취소의 요건에 대한 이론적 설명은 제대로 나열하면서도, 막상 사실관계의 분석은 매우 부실하고 부정확하게 하는 응시생이 많았는데, 이는 아마도 공부의 방법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 아닌가하는 의문이 들었다. 흔히 나도는 강의노트, 테이프 등 이른바 “요점정리”만을 해둔 자료에만 의존하여 요건 사실 암기에만 골몰하는 식의 공부를 거듭해 본들, 사실관계의 분석에 필요한 안목이 생겨나기는 어려울 것이다. 간단히 요점만 정리한 교재는 자칫 잘못 사용하면 약이 되기보다는 독이 될 위험이 크다는 점을 명심하였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