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의 면모

1. 감수성

공자가 자로의 상가 뜰 가운데서 곡을 하던 중, 조문 온 사람이 있었다. 선생님이 인사하고 그를 맞이하였다. 그자가 곡을 마치자 사람을 보내 그자에게 자로의 죽음에 관해서 문의했다. 물어본 사람이 와서 이르기를 “시체를 소금에 절였다는군요.” 이에 선생님이 젓갈을 모두 버리라고 명했다.
孔子哭子路於中庭。有人吊者,而夫子拜之。既哭,進使者而問故。使者曰:「醢(해)之矣。」 遂命覆醢 (예기, 단궁 상)

안연이 죽었다. 선생님이 이렇게 말했다. “아! 하늘이 나를 버리는 구나, 하늘이 나를 버리는 구나.”
顏淵死。子曰:「噫!天喪予!天喪予!」 (논어, 선진 11.9)

안연이 죽었다. 선생님이 지나칠 정도로 슬퍼하시며 통곡을 하였다. 수행원들이 말했다. “선생님께서 너무 슬퍼하십니다.” 선생님이 말했다. “내가 너무 슬퍼한다고? 안연이 죽었는데 너무 슬프지 않으면, 누가 죽어야 이만큼 슬프겠느냐?”
顏淵死,子哭之慟。從者曰:「子慟矣。」 曰:「有慟乎?非夫人之為慟而誰為!」 (선진, 11.10) 《廣韻·去聲·送·洞》慟:慟哭哀過也

꿩들이 주변 기색을 살피다 날아올라 몇바퀴 돈 다음 다시 내려와 모여있었다. 선생님이 이렇게 말했다, “산에 노니는 까투리로구나. 제철이지! 제철이고 말고!” 자로가 [까투리를 잡아서] 꿩요리를 해드렸다. 선생님은 세번 냄새를 맡고는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色斯舉矣,翔而後集。曰:「山梁雌雉,時哉!時哉!」子路共之,三嗅而作。(논어, 향당 10.18)

[In preparing ceremonial offerings] The dishes are not fully cooked, the elaborately piled meat is not to be tasted. They are to be sniffed three times and not eaten. (Xun Zi, Li Lun)
利爵之不醮(=盡)也,成事之俎不嘗也,三臭之不食也,一也。(순자, 예론)

고타마 시타르타(c. 563-483BC):

하루는 시타르타가 궁정 신하의 자제들 그의 친구들과 함께 숲 속 조용한 곳에서 쉬려고 궁궐 밖으로 소풍을 나왔다. 말을 타고 가던 시타르타는 농부들이 쟁기로 땅을 갈아엎어 흙이 파도처럼 넘실대는 곳을 지나게 되었다. 땅을 파뒤집어 놓은 곳에는 어린 새싹들이 쟁기에 찢겨 사방에 흩어져 있었고, 땅속에 사는 벌레와 애벌레들은 몸이 잘려 꿈틀대고 있었다. 시타르타의 마음은 마치 일가 친척들이 죽임을 당한 것 같은 슬픔으로 가득차 올랐다. 또한 일하는 농부들의 얼굴은 흙먼지와 따까운 햇살과 바람에 찌들어 있었고, 그들이 부리는 소들도 무거운 흙더미 끌기에 힘겨워하고 있었다. 시타르타는 연민의 심정을 걷잡을 수 없었다. 말에서 내린 시타르타는 슬픔이 가득한 마음으로 파헤쳐진 땅 한가운데로 천천히 걸어갔다. 그곳에서 그는 세상 만물의 탄생과 파멸에 대해서 깊은 명상에 잠겼으며 그의 입에서는 “정말 딱하구나!”라는 말이 절로 흘러나왔다. (Ashvaghosha, Buddhacarita, 5장 ‘도망’ 편의 도입부 5.2 – 5.7)

2. 고아, underdog 그리고 ‘先進’

공자가 어릴적에 고아가 되어 아버지의 묘가 어딘지를 알지 못했다. 어머니의 관을 오부(五父)의 번화가에 갖다 두었다. 그것을 본 사람들은 장례식이 거행되는 것으로 여겼다. 관이 극진히 단장되어서 그랬다. 추(郰)지방 출신인 만부의 어머니에게 물어본 연후에 어머니를 아버지와 합장할 수 있었다. (Liji, Tan Gong I, 10)
孔子少孤,不知其墓。殯(=초“빈”)於五父之衢。人之見之者,皆以為葬也。其慎也,蓋殯也。問於郰曼父之母,然後得合葬於防。(예기, 단궁 상) (공자= 郰人之子)

어느 고위관리가 자공(子貢)에게 이렇게 물었다. “선생님이 성인(聖人)이라고? 그럼 어째서 여러 재능이 있지?” 자공이 이렇게 대답했다. “선생님은 원래 하늘이 성자로 내려주신 분이시고요, 능력도 많으세요.” 선생님이 이 말을 듣고 이렇게 말했다. “그 고위관리가 나를 아는구나. 내가 어릴적에 비천해서 온갖 잡일을 할 줄 알게 된 것일 뿐이야. 고귀한 군자(君子)가 여러 재능이 있는줄 알아? 그렇지 않아.”
大宰問於子貢曰:「夫子聖者與?何其多能也?」子貢曰:「固天縱之將聖,又多能也。」子聞之,曰:「大宰知我乎!吾少也賤,故多能鄙事。君子多乎哉?不多也。」 (자한, 9.6)

선생님이 이렇게 말했다. “예법과 음악에 대해서 진취적 입장에 서는 자들은 시골출신들이지. 예법과 음악에 대해서 보수적 입장에 서는 자들은 고귀한 군자들이고. 실용적 측면에서 나는 진취적 입장에 서는 자들을 따른다.”
子曰:「先進於禮樂,野人也;後進於禮樂,君子也。如用之,則吾從先進。」 (논어, 선진 11.1)

선생님이 변방부족들과 함께 지내고자 했다. 누가 이렇게 말했다. “지저분 한데서 어쩌려 그러세요?” 선생님이 이렇게 말했다. “고귀한 군자가 머무르는 곳인데 어찌 지저분하겠느냐?”
子欲居九夷。或曰:「陋,如之何!」子曰:「君子居之,何陋之有?」 (자한, 9.14)

3. ‘폭 넓은’ 친구 관계

친구가 죽었는데 장례 지내줄 자가 없었다. 선생님이 이렇게 말했다. “내 집에 빈소를 차려라.”
朋友死,無所歸。曰:「於我殯。」 (논어, 향당 10.15)

4. “Noblesse oblige, n’est-ce pas?”

검은 옷에는 흑염소 털옷을 걸쳐 입으셨고, 힌 옷에는 흰사슴 털옷을 걸쳐 입으셨으며, 황토색 옷에는 여우 털옷을 걸쳐 입으셨다.
緇(치=black)衣羔裘(고구=흑염소털옷),素衣麑裘(흰사슴털옷),黃衣狐裘 (향당, 10.6)

잠옷은 꼭 입으셨는데, 몸길이의 한배 반이 되는 것이었다. 여우와 담비의 털가죽을 두툼하게 채워서 그 위에 앉으셨다. 상(喪)을 당한 기간이 아니면 반드시 패물을 장식으로 차셨다. 必有寢衣,長一身有半。狐貉之厚以居。去喪,無所不佩(10.6)

밥은 곱게 깍은 쌀로 지은 것을 좋아하셨고, 고기는 가늘게 썬 것을 좋아하셨다. 보기에 안좋으면 드시지 않았고, 냄새가 안좋아도 드시지 않았고, 너무 익혀도 드시지 않았고, 제철이 아니면 드시지 않았다. 반듯하게 자르지 않은 것도 드시지 않았으며, 간이 맞지 않아도 드시지 않았다. 食不厭精,膾不厭細 … 色惡,不食。臭惡,不食。失飪(=over-cooked),不食。不時,不食。割不正,不食。不得其醬,不食 (향당, 10.8)

좌석이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으면 앉지 않으셨다. 席不正,不坐。(10.9)

고기가 많이 있어도 많이 먹지 않으셨다. 하지만 술은 무진장 드셨으나 술주정을 하지는 않으셨다. 시장에서 파는 술이나 육포는 드시지 않으셨다 肉雖多,不使勝食氣。惟酒無量,不及亂。沽酒市脯不食 (10.8)

안연이 죽었다. 안연의 아버지 안로(顏路)가 선생님께서 수레를 팔아서 겹관을 만드는 비용을 댈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선생님이 이렇게 말했다. “이건 돈 문제가 아니고, 당신이나 내 아들에 관한 문제지요. 내 아들 이(鯉)가 죽었을때 나는 겹관이 아니라 홑관으로 장례를 지냈어요. 내가 수레를 팔고 걸어 다니면서 까지 겹관을 해주려 하지는 않았어요. 대부들 뒤에서 수행해야 하는 내가 걸어다닐 수는 없잖아요.”
顏淵死,顏路請子之車以為之椁。子曰:「才不才,亦各言其子也。鯉也死,有棺而無椁。吾不徒行以為之椁。以吾從大夫之後,不可徒行也。」 (선진, 11.8)

안연이 죽었다. 제자들이 후하게 장례를 치뤄주고자 했으나 선생님이 그럴 수 없다고 했다. 제자들이 후하게 장례를 치뤄주자 선생님이 이렇게 말했다: “회(回; 안연의 이름)는 나를 아버지로 대했는데, 나는 안연을 아들로 대할 수 없게되어 버렸네. 내 탓이 아니고 다 너희들 탓이야!” 顏淵死,門人欲厚葬之,子曰:「不可。」門人厚葬之。子曰:「回也視予猶父也,予不得視猶子也。非我也,夫二三子也。」(선진, 11.11)

5. 진짜 중요한 것

마구간이 불에 탔다. 선생님이 조정에서 퇴근하여 이렇게 물었다. “사람이 다치지 않았느냐?” 말에 대해서는 묻지도 않으셨다.
廄(구)焚。子退朝,曰:「傷人乎?」 不問馬。 (Lunyu, 10.12)

6. 개혁 성향

선생님이 이렇게 말했다. “법에 정해진 내용을 따르지 않을 수 있겠나? 하지만 법을 개선하는 것이 더 소중하지. 칭찬하는 말을 들으면 기쁘지 않을 수 있겠나? 하지만 그 말을 가려듣는 것이 더 소중하지. 칭찬한다고 좋아하기만 하고 그 말을 가려듣지 않고, 법을 따르기만 하고 개선하지 않는 자들은 도무지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네.”
子曰:「法語之言,能無從乎?改之為貴。巽與之言,能無說乎?繹之為貴。說而不繹,從而不改,吾末如之何也已矣。」 (자한, 9.24)

7.반란의 아이콘?

공구는 철저히 계획하고 모의해서 반란 세력을 지원하고, 열심히 생각하고 아는 것도 많은데 그것으로 사악한 행위를 감행하며, 아랫 사람들을 부추겨서 윗 사람을 끌어내리도록 하고, 신하들에게 주군을 살해하도록 가르칩니다. 이것은 현명한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닙니다. 제후국을 방문해서는 반란 세력과 함께하는데 이것은 올바른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닙니다. 사람들에게 충성심이 없어졌음을 알고는 반란을 일으키도록 부추기는데, 이것은 좋지도 않고 옳지도 않습니다. 도망간 후에도 모의를 하고, 등뒤에서는 나쁜말을 퍼뜨립니다. 자신은 옳은 일을 한다고 믿겠지만 사람들이 보기에는 혼란스럽고, 그 사람이 기획하고 감행하려 준비하는 것에 군주나 신하들이 함께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墨子, 非儒下, 8)

진시황34년(기원전213): 이사(李斯)

이제 황제께서 천하를 아우렀으니 옳고 그름을 정하는 유일한 권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자기들끼리 배운다면서 패거리를 이루어 법과 교시를 비방하고, 명령을 듣고도 각자 자신이 배운대로 그것을 해석하고 의논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집안에 들어와서는 비판의 심정으로 가득하고, 집밖에 나가서는 여기저기 다니며 의논이 분분합니다. 군주에게 과시하는 방법으로 명성을 얻고, 이상한 말로 자신의 위상을 높이고, 무리들을 이끌며 [권력자에 대한] 비방을 지어냅니다. 이것을 금지하지 않으면 군주의 위세는 약화되고 당파가 형성될 것입니다. 금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사관(史官)으로 하여금 진나라의 공식기록이 아닌 것은 모두 불태우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박사관(博士官)의 직에 있지 않은 자가 소장하는 詩, , 제자백가의 책들은 모두 모아 불태우고, 그런 후에도 감히 무리를 지어 詩, 書를 들먹이는 자는 저자거리에서 사형을 시키고, 옛 역사를 들먹이며 현재를 비방하는 자(以古非今者)는 멸족시키십시오. 이런 자들을 발견하고도 잡아들이지 않는 관리들 또한 같은 죄로 다스리십시오. 명령을 내린 후 30일 후에도 이런 책들을 불태우지 않은 자는 문신을 새겨서 변방의 노역장으로 보내십시오. 수거하여 태우지 않아도 되는 책은 의학, 약학, 점복, 종자와 수목에 관한 것들입니다. 법령을 배우고 싶은 사람은 관리로부터 배우도록 하십시오 (사기, 진시황본기, 38 (34)

7. 覺者

선생님은 다음 네가지에 얽매이지 않았다. 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꼭 이래야 한다는 당위에 얽매이지 않고, 고루함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 자신에 얽매이지 않았다.
子絕四:毋意,毋必,毋固,毋我。(자한, 9.4)

心有所憶謂之意;意之所存謂之志 (黃帝內經, 靈樞經, 本神)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자신의 몸을 더럽히지 않은 이들이 바로 백이(伯夷), 숙제(叔齊)아닐까? 한편 유하혜(柳下惠)와 소련(少連)은 뜻도 굽혔고, 몸도 더렵혔지만 말은 바르게 했고 행동도 사려깊었을 뿐이지. 우중(虞仲)과 이일(夷逸)은 은둔생활을 하면서 거침없이 말을 했지만 신변을 깨끗하게 유지했고 은둔생활을 하기로 한 결정도 상황상 불가피했지.

그런데 난 이사람들과는 달라. 해도 된다는 것도 없고, 하면 안된다는 것도 없어 (我則異於是,無可無不可) (微子, 18.8)

묵자는 실용에 골몰한 나머지 문명을 몰랐고, 송자는 욕망을 억누르는데 골몰한 나머지 성취를 몰랐고, 신자(慎子)는 법에 골몰한 나머지 현명함을 몰랐고, 신자(申子)는 기예에 골몰한 나머지 지혜를 몰랐고, 혜자는 수사(修辭)에 골몰한 나머지 실질을 몰랐고, 장자는 하늘에 골몰한 나머지 사람을 몰랐다. … 공자는 최상의 지혜가 있었을 뿐 아니라 가리워져 막힌 곳이 없었다(孔子仁知且不蔽). 荀子, 解蔽,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