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법도 법이다” 라고요?

참고 문헌:

강정인, “소크라테스, 악법도 법인가?”, 한국정치학회보, Vol.27NaN2, (1994)
권창은, “소크라테스에 있어서 정의와 준법”, 哲學硏究, Vol.35NaN1, (1994)
이정호, “플라톤의 대화편 기행 2 「 크리톤 」 :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라고 말한 적이 없다.” 시대와 철학, 6.2 (1995).
이종률. “인간과 법 – 법의 구속력 문제에 대하여 -.” 법철학연구, 5.1 (2002).
최봉철 ( Bong Chul Choi ) , “악법과 법준수의무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입장” , 법철학연구 VOL 16-3 (2013) 7-38

Joseph Raz, “The Obligation to Obey: Revision and Tradition“, 1 Notre Dame J.L. Ethics & Pub. Pol’y 139 (1985).

질문

  • 법에 구속력이 있다면, 그 구속력은 어디에서 생기는가?
  • 국민은 국가에 거주하고 생활함으로써 그 국가의 법에 구속되겠다고 동의한 것으로 여길 수 있을까?
  • ‘동의’가 법의 구속력의 근거라면, 그러한 동의는 누구와 누구 간의 동의인가?
  • 소크라테스가 사형선고 전에 스스로 유배(추방)을 선택할 수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는?
  • 사형선고 후에 소크라테스가 만일 도주하였다면, 그의 영향력이나 그에 대한 평가는 어떠했을까?
  • 소크라테스는 자살한 것과 유사하다고 평가할 수 있을까? 그렇게 볼 수 있다면, 어째서 그런 결단을 내렸을까?
  • 공자는 “의지가 굳은 선비, 윤리적 결기가 있는 사람은 살기 위해 윤리적 결기에 어긋나는 행위를 하지는 않아. 자기 목숨을 바쳐서 윤리적 결기를 완성하지” 라고 했는데(子曰:「志士仁人,無求生以害仁,有殺身以成仁。」 衛靈公, 15.9), 소크라테스의 태도와 비교할 수 있을까?
  • “소크라테스가 ‘악법도 법이다’라고 하였다”는 주장을 내세우는 자들의 agenda는 무엇일까?
  • 공자는 “막강한 군대일지라도 그 지휘자를 제거할 수는 있지만, 필부의 의지를 없앨 수는 없다(子曰:「三軍可奪帥也,匹夫不可奪志也。」 子罕, 9. 26)”라고 했는데, 이것과 소크라테스와 비교할 수 있는지?
  • 공자는 “고귀한 사람은 무엇이 옳은지를 잘 알고, 소인배는 무엇이 이득이 되는지를 잘 안다”고 했는데(子曰:「君子喻於義,小人喻於利。」 里仁 4, 16), 이 점을 고려한다면, 소크라테스의 결단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지?

Crito, 52a-e

http://www.gutenberg.org/files/13726/13726-h/13726-h.htm

페르세우스 디지털 도서관 프로젝트

아테네의 법이 마음에 들지 않았으면 아테네에 살지 않았을 사람인 네가 아테네에 거주하면서 애도 낳고 했으므로 아테네 법에 애착을 가지며 아테네 정부 권위에 스스로 복종한 것이다.

재판절차 진행 중, 망명을 적법하게 선택할 수 있었는데 그것을 선택하지 않고, 죽어야 한다면 기꺼이 죽겠다면서 망명보다는 죽음을 택하겠다고 해놓고 이제와서 저열한 노예처럼 법을 어기고 도망하려는가?

비록 명시적 표현은 없었지만, 행동을 통해서 묵시적으로 아테네 법에 따라서 살겠다고 동의한 게 아닌가?

14.[아테네의 법]은 이렇게 말했을 것이네. “소크라테스씨, 당신이 아테네 법과 아테네에 만족했었다는 점에 대한 강력한 증거가 있어요. 왜냐하면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당신은 거기 머물지 않았을테니까요. [당신은 아테네를 떠난 적이 거의 없고] 아테네와 그 법에 만족한 나머지 다른 도시나 다른 도시의 법을 알고 싶어하지도 않았고, 아테네와 아테네 법에 애착을 가져서 여기서 애를 낳아 키울만큼 아테네 정부에 복종하기로 수락했어요. 특히, 당신 자신의 재판에서도, 당신이 원하기만 했다면 아테네의 동의 하에 망명을 택할 수 있었어요. 지금 아테네의 동의 없이 당신이 감행하려는 탈옥과는 달리. 그때 당신은 죽는 것이 그리 나쁘지 않고, 망명하기 보다는 차라리 죽겠노라고 자랑스럽게 말했어요. 그런데 이제와서 그런 자신의 말에 부끄러움도 없이 아테네 법을 존경하지 않고 오히려 파괴하려는군요. 아테네 정부에 복종하기로 한 약속들을 어기며 탈옥을 하려는 당신은 마치 저질 노예처럼 행동하는군요. 그러니 우선 이것부터 대답해 보세요. 당신은 비록 명시적인 합의는 없었더라도 당신의 행동을 통하여 아테네법에 따라 살기로 동의했다는 것이 사실 아닌가요?”

Apology

39. 아무말이나 하고 아무 행동도 마구 한다면 죽음을 피하는 것이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저열함을 피하는 것은 훨씬 어렵다. 나는 죽음의 포로가 되었지만, 나를 고소하는 자들은 저열함의 포로가 되었다.

나는 당신들이 부과하는 사형을 당하겠지만, 당신들은 부당함과 부정의를 저지르는 것이된다.

30. 당신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말해보겠다. 내가 사형을 당하고 나면 당신들은 내가 당한 것보다 훨씬 심한 꼴을 당할 것이다. 나를 죽이면 당신들은 자신의 삶을 더이상 해명 안해도 될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그 반대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당신들을 상대로 문제제기를 할 것이다. 사람들을 사형시킴으로써 당신들의 그릇된 삶에 대한 문제제기를 못하게 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건 착각이다.

33. 훌륭한 사람에게는 삶이나 죽음이나 나쁠게 없고 신들도 그자의 관심사를 무시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 죽음으로써 온갖 시름을 더는 것이 내게는 더 낫다. … 나를 고소한 자들이나 나에게 사형을 선고한 자들은 나를 해꼬지하려는 사악한 의도를 가졌고 그점에서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나는 그들에게 반감이 없다 (죽는게 더 나으니까).

내 아들들이 커서, 혹여라도 재산이나 다른 어떤 것을 미덕보다 더 소중하게 여긴다면, 내가 당신들에게 그랬듯이 그애들을 벌주기 바란다. 그애들이 혹시라도 허영에 사로잡혀 실제 이상으로 자신들이 대단한 존재라고 착각하고 있다면 내가 당신들에게 그랬듯이 그애들을 야단쳐주기 바란다.

이제 떠날 시간이 왔다. 나는 죽을 것이고 당신들은 살 것이다. 하지만 어느 것이 더 나은 상태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루소, 사회계약론, (Liv. 1, Ch. 3, 가장 힘쎈 자의 법 Du droit du plus fort)

“완력은 물리적인 권능다. 완력에서 무슨 윤리가 생겨날 수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완력에 굴복하는 것은 불가피해서 그런 것이지 의지에 따른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기껏해야 조심성 있는 행위이다. 어떤 의미에서 그것이 도덕적인 의무가 될 수 있겠는가? La force est une puissance physique; je ne vois point quelle moralité peut résulter de ses effets. Céder à la force est un acte de nécessité, non de volonté ; c’est tout au plus un acte de prudence. En quel sens pourra-ce être un devoir? …

완력이 없어지면 함께 없어지는 법이란게 가당키나 한가? 완력으로 복종하게 만들어야 한다면 의무로 복종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완력으로 복종하게 만들 수 없게 되면 복종할 필요도 없어진다. 따라서 완력을 법이라 불러본들 달라지는 것은 없다. 이때 법이라는 말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
Or, qu’est-ce qu’un droit qui périt quand la force cesse ? S’il faut obéir par force, on n’a pas besoin d’obéir par devoir ; et si l’on n’est plus forcé d’obéir, on n’y est plus obligé. On voit donc que ce mot de droit n’ajoute rien à la force ; il ne signifie ici rien du tout….

그러므로 법이 완력에 근거하고 있는 것은 아니며, 사람은 오직 정당한 권력에만 복종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자…
Convenons donc que force ne fait pas droit, et qu’on n’est obligé d’obéir qu’aux puissances légitimes.”